시인에게(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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휴가철에도 쉴 수 없는 시인에게
휴가철에도 쉴 수 없는 시인에게 휴가철 주말이 중복이다 한낮의 폭염도 한밤중의 열대야도 그칠 줄 모르는 칠월 하순 장마철이다 초복 삼계탕도 건너뛴 채 숲속 오두막집에서 계란찜 감자볶음으로 명자꽃과 밥먹고 산바람에 춤추듯 흔들거리는 나뭇잎을 보아라 약숫물 한잔 마시고 입..
2017.07.22 -
내게도 간절한 바램이 있기에
내게도 간절한 바램이 있기에 영세를 받으러 가던 날 너무 오래 돼 넥타이 매는 법을 그만 잊었지만 말쑥한 정장 차림새로 제대 앞에 서서 물 붓고 기름 바른 후 그리스도인으로 첫 영성체를 내 몸에 모시던 날 주님의 은총이 신앙의 신비로움이 홀연 찾아왔다네 갈라터진 이 땅에 하느님..
2014.02.03 -
은행나무 까치집을 바라보며
은행나무 까치집을 바라보며 까치집이 저기에 있네 마산 불종거리 은행나무 위에 얹힌 덤불집이 튼튼해 지난 겨울 폭설 속에서도 끄떡없었던 그곳 오늘밤 달은 환하고 찬바람은 주춤한 창동 오동동 딱 중간에 자리잡은 저 까치집 대단해 한때 빌딩살이 모텔살이도 해 보았건만 제 집을 ..
2013.11.15 -
가고파는 가고파가 아니다
가고파는 가고파가 아니다 국화축제에 가서 맛본 국화꽃빵 배고픈 날의 기억이 여직 남아 있데 한 개 500원 줄서서 사 먹으며 하염없이 바라보았던 무학산 마산만이 백만송이 국화보다 눈길이 갔어 그 돈이면 가난한 이들에게 쓰지 그럴 걸 생각마저 들던 씁쓸한 내 마음을 뉘 알런가 매..
2013.11.04 -
저 달에 외치는 소원 한 가지
저 달에 외치는 소원 한 가지 휘영청 보름달이 뜨면 왠지 그리워진다 아늑한 고향에 가족 품으로 돌아오지 못한 사람들이 대한문 앞에서 창살 속에서 추석을 보냈을 이들 함께 살자 외치며 정리해고 죽음에 맞선 쌍용차 노동자를 분단조국이 통일되는 그날을 위하여 헌신했던 분들을 우..
2013.09.20 -
입추를 맞으며 내가 생각는 것
입추를 맞으며 내가 생각는 것 동네 텃밭가에 활짝 핀 샛노란 호박꽃이 내게 인사를 건넨다 입추날 더위에 땀이 줄줄 흘러도 시인에게 반가운 이웃이다 정든 검은 고양이처럼 떨어질 수 없는 도시농업 풍경이다 오가며 자주 보는 상추 고추 깻잎 옥수수 결명 가지 등 찬거리가 고맙다 시..
2013.08.07 -
시인에게 벗이 된 검은 고양이
시인에게 벗이 된 검은 고양이 한번 맺은 인연은 질기다 사람도 야옹이도 정이 들면 더 그렇다 마산에 폭설이 줄곧 쏟아졌던 겨울날 검은 고양이 어미가 폐가에서 여섯 마리를 낳고 봄에 넷이 죽고 검정이와 얼룩이가 용케 살아 남았다 다락방 종이박스에서 새끼 둘을 곁에 누인 채 굳어..
2013.07.23 -
꽃들도 잠이 든 한밤중에 쓰다
꽃들도 잠이 든 한밤중에 쓰다 한낮은 덥고 밤은 선선타 꽃도 잠든 이 시각 야옹이들 뛰노는 텃밭 별 서너 개 떴다 올해 들어 돌아보지 않았던 내 딴엔 도시농업 뜯어먹곤 했던 질경이 상추 돌나물 취나물 민들레 쇠뜨기 머위 냉이 범의 귀 고들빼기 잎들도 손길 한번 주지 못했다 장미꽃 ..
2013.06.05 -
한솥밥이 그리운 겨울밤에
한솥밥이 그리운 겨울밤에 밥 한 그릇 국 한 그릇 오랫만에 차려놓고 묵직한 몸을 풀어라 산악회 회의 갔다가 추어탕에 소주를 함께 나눠 먹으며 쌀 한톨 찬거리 하나 농민의 땀방울이 스민 줄 내 알았네 일식삼찬도 건너뛰기 일쑤인 시인에게 너무 고마운 밥상 다시 한파가 닥친 ..
2012.01.12 -
석전동 어귀에 들어서며
석전동 어귀에 들어서며 한밤중에 돌아오면 언제나 마주보는 저 달 도시를 떠나 깊은 산에 터를 잡고 몸살림 해 볼까 두어 잔 마신 술에 취해서야 어찌 노동하려나 밤 지새우며 글쓰는 시인에게 달은 연인처럼 오늘도 나를 반겨맞으니 늘 고맙구나
2011.10.1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