꽃들도 잠이 든 한밤중에 쓰다

2013. 6. 5. 03:51◆ 길이 보이지 않는 거기서 길을 내/2부 새벽달

 

 

 

꽃들도 잠이 든 한밤중에 쓰다

 

 

한낮은 덥고 밤은 선선타

꽃도 잠든 이 시각

야옹이들 뛰노는 텃밭

별 서너 개 떴다

올해 들어 돌아보지 않았던

내 딴엔 도시농업

뜯어먹곤 했던 질경이

상추 돌나물 취나물

민들레 쇠뜨기

머위 냉이 범의 귀

고들빼기 잎들도

손길 한번 주지 못했다

장미꽃 방울꽃에도

눈길 한번 주지 못했다

언제 피어났는지

이름모를 노란꽃 곁에서

담배 한대 피우고

쉬었다가 나오는 길

꽃보다 덜 잔다

사는 게 팍팍하다

도둑맞은 시집 놔 두고

스무 권 정도 남았다

연말까지 버텨야겠는데

무슨 수가 나겠지

잠 못 드는 시인에게

오늘도 새벽달 보며

거처로 돌아가게 생겼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