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행도의 <모두 행복한 길> 시집 서평^^

2016. 11. 25. 22:32지역 문화행사 소식/문화읽기




개인의 넋두리보다 보다 나은 서민대중의 삶을 위하여 문예운동에 복무할 수 있을 때 비로소 시인이라 불린다는 점을



한 권의 책을 펴낸다는 일은 쉽지 않다. 제행도 그는 웹3.0 쌍방향 소통의 시대에 페이스북에다가 시를 꾸준히 포스팅하다가, 어느날 문득 시집을 내야겠다는 생각을 한 것으로 안다. 진동 태생으로서 마산고 창원대 경영학과를 거쳐 고향집 말기암 노모의 병치료를 위해 손수 산에서 약초를 캐고 간호를 하는 효자에 속한다. 통상적인 등단 절차를 생략한 채 곧바로 시집출판으로써 시인의 길을 가고자 작심했다. 후배가 서평을 부탁하길래 선뜻 받긴 했는데 가편집본인 첫 시집 제목이 <모두 행복한 길>이길래 조금은 당돌하게 와 닿는다. 1부는 '생활의 파편, 다짐'이고, 2부는 '약초와 시'이고, 3부는 '어머니'이고, 4부는 '염원의 시'이고, 5부는 '일상에서 알다'이고, 6부는 '짧은 회상-기억 수필'이다.


등에 업혀 있던/ 누군가 아님 무언가를/ 떼어내러 간 곳/ 몸도 마음도 날아갈 듯/ 가벼워진 듯한데/ 떼어낸 듯한데// 다시금/ 밀려오는 중압감/ 이건 뭘까?/ 또 다른 어떤 것이/ 등에 철퍼덕하고/ 올라탄다// 삶이란/ 누군가를 아님 무언가를/ 업고 살아가야 하는 것   - "삶이란" 전문


삶의 무게를 술술 읊조리듯 풀어내 쉽게 읽히는 시다. 아직 덜 여문 것같은 감이 없잖지만 생활 속에서 보고 느낀 바를 시적 자아로 진솔하게 또는 평이하게 써내려가는 스타일이다. 요즘 인터넷에 오르내리는 시들이 생활정서를 자연스럽게 넋두리하듯이 시어로 표현하는 투다.


아홉달을 굽어 시월에/ 무덤가에 하얗게 피어난다// 아이의 순수를 넘어서는/ 어머니의 무한한 사랑// 꽃이 피기 전 꽃망울/ 음력구월구일 달여먹어라// 하늘에서도 딸 위하는 맘/ 구절초는 사랑으로 피었다// 절개를 뜻하는 천상의 꽃/ 어머니 사랑보다 못하리다// 시월 구절초는/ 어머니 얼굴이다   - "구절초" 전문


'달여먹어라'는 한마디가 공감을 불러 일으킨다. 그의 집안 사정을 미루어 짐작할 때 구절초는 병구완에 쓸 약초이겠기에 아픈 정서가 묻어난다. 보편성과 특성이 결합된 시어 하나가 울림이 있다. 앞으로 남이 겪지 못하는 삶의 흔적을 시로 형상화했으면 좋겠다.  


밤새 하얀 서리 내려앉은 헌 신발을 툭툭 털고/ 까만 머리 파뿌리가 된 새벽의 노부부는/ 작은 전등에 의지해 부산스런 손을 놀린다/ 고이 묻어 두었던 무시를 꺼내 담은 두 가마니/ 동장군을 이겨낸 파를 뽑아 솎은 보자기 세개/ 콩 두되 고구마 한봉지 빈물병에 담기는/ 멸치액젖 다섯 통/ 다다올 설을 보낼 비상금이 손수레에 실리고/ 이집 저집마다 비슷한 가마니와 보자기가/ 첫 차에 실려 새벽 시장으로 간다   - "시골 노부부의 설맞이" 부분 


시골생활의 정서가 물씬하다. 시장으로 가는 농작물의 모습이 눈에 선하다. 어투가 토속어라 더 정감이 간다. 진동에 살면서 고향정서가 배인 작품들에 공을 들이면 괜찮겠다.


삶은 결코 나를 힘들게 내버려두지 않는다/ 지금 비록 벼랑 끝에 서 있는 것 같아도/ 부딪혀 나가면 반드시 용기와 희망을 준자/ 지금까지 살아온 삶은 거짓이 아니다/ 헤어날 수 없을 것이라 낙담하지 말고/ 앞으로 한걸음만 내딛어 보자/ 내 삶이 헛되지 않았음을 나에 보여주자/ 아니 삶은 나만을 위함이 나니다/ 나와 관계해 왔고 같이 있는 모든 이들에게/ 잘못 살았다는 후회를 남기지 말지어다/ 내가 나를 포기하지 않는다면/ 삶은 결코 나를 버리지 않는다   - "믿음" 전문


자기 성찰과 다짐이 돋보이는 시다. 시를 쓴다는 것은 자신을 단련시키는 노동이기에 스스로 길을 여는 작업이기도 하다. 다만 무엇을 위한 다짐이며 믿음인가가 사람마다 다를 뿐이다.


제행도가 세상에 내놓고자 하는 시편들은 아직 완성도가 떨어지는 감상적인 작품들도 적잖다. 하지만 첫 출발이란 점을 감안하면 애정어린 눈으로 읽을 수 있겠다. 그의 강점은 고향집 시골생활에서 잔잔히 배여나오는 토속적인 정서와 생활어를 형상화하기에 맞춤한 환경에 처해 있다는 것이다. 개인의 넋두리보다 자신과 주변을 차분히 돌아보며 보다 나은 서민대중의 삶을 위하여 문예운동에 복무할 수 있을 때 비로소 시인이라 불린다는 점을 잊지 말기를 바란다. 그리고 창원시청 광장 촛불대열에서 만나 반가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