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너울의 경복궁 화성행궁 답사길에서^^

2010. 3. 16. 04:07산행기/답사·산행·동문

답사란 내가 보고 느낀 만큼 알게 된다. 한너울우리문화사랑회(http://cafe.daum.net/64woori?t__nil_cafemy=item)의 소식지 <온새미로>와 답사차량 내의 <궁궐영상물>을 통해 사전지식을 얻긴 하지만, 이번 <경복궁 수원 화성행궁 궁궐답사>를 가 보니 역시 백문이불여일견이었다. 마산, 창원에서 서울까지 제법 먼 길을 달려 한강을 건너 서울시 인왕산 자락의 경복궁과 경기도 수원 화성행궁까지 둘러보는 여정은 이색적인 체험이었다. 어찌 보면 수학여행을 온 기분이 들기도 하였다. 하고 많은 답사코스를 놓아두고 궁궐을 택한 한너울 운영위의 결정은, 의외로 적잖은 후원과 회원들의 연회비 납부를 비롯해 관광버스 좌석을 44명이나 채우는 기록을 남겨 화제다.

 

 

 

오전 7시 마산역에서 출발해 노상에서 충무김밥으로 점심을 때우고 <경복궁>에 도착하니, 진우영 서울시 문화관광해설사가 반가이 맞이해 주었다. 수문장 교대의식이 펼쳐지는 근정전 궐문 입구에서부터 볼거리가 많았다. 옛 복장의 조선군사를 보니 강도 일제에게 나라를 빼앗긴 울분이 사무쳐 잠시 걸음을 멈추었다. 조선왕조 5백년의 영욕이 서린 경복궁은 외국인 관광객들도 꽤 눈에 띄었다. 명성왕후가 시해당한 장소인지라 한국인으로서는 마음이 무거운 곳이었다. 생각 같아선 어데 추모비라도 세웠으면 좋겠는데, 과거사를 덮어주자는 것인지 서울시의 관광마인드가 못마땅했다. 백범 김구선생, 의병들이 독립투쟁에 나선 계기가 바로 국모시해였던 것이다.

 

  

 

<해설사>는 당시 사진과 경복궁 그림을 보여주며 문화유산 하나하나씩 자상하게 설명해 주었다. 우리 조상들의 뛰어난 궁궐 건축미에 감탄하면서 코스를 이동하며 문화재에 깃든 의미를 새겼다. 장장 3kM에 달하는 경복궁 궐내에는 7천여개 건물이 들어서 있었다. 사극 드라마에서 보듯 백성들 살림집도 있었을 테고. 왕구상 회장은 중간에 전화도 받곤 했는데 서울에서 회원 세 분이 합류케 돼 그런 것 같았다. 현재 한너울 다음카페 회원은 2백여명이고 마창진 회원은 1백여명인데, 지금까지의 24차례 답사 중 이번 16차 궁궐답사에 서울 회원들이 참석해 저력을 과시하였다.

 

  

 

<한너울 답사길>은 자유로웠다. 부모와 함께 온 아이들은 신이 났고, 어른들은 새것을 깨치는 즐거움을 누렸다. 나는 인왕산 산성과 그 너머 눈덮인 북한산 인수봉에 눈길이 끌렸다. 또 천고의 세월 동안 나무에 둥지를 틀었을 까치집이 나를 사로잡았다. 문화유산 하나에 깃들인 이야기야 다시 보면 될 것이지만, 경복궁을 둘러싼 풍경은 안내 책자에 없는 것이다. 송년회때 본 회원도 있고 또 새로 온 회원도 있어 한너울이 나날이 새로운 것 같아 좋았다. 운영위에서 답사 3일 전 예습도 했건만, 아무래도 전문지식보다 자연스레 보고 느끼는 게 더 나을 듯하였다. 질문을 하는 회원도 있었는데 관심도가 꽤 높은 편이었다.

 

  

 

이날은 경복궁만 둘러보고 창덕궁, 창경궁, 종묘는 못 보았다. 수선전도에 나타난 <조선의 궁궐전도>를 보면 가히 그 규모를 알 수 있다. 역사적 사건만 해도 갑신정변, 민비시해, 조선총독부 등 비운이 서려 있다. 마침 이순길 건축사가 서울에서 참석해 건축미에 대해 남다른 느낌을 가졌을 터이다. 해설사의 설명을 들으며 사실 온새미로를 펼치고 숙지했어야 됐는데 좀 무심하였다. 보는 것만으로 만족하기엔 답사에 쏟은 열정이 아까워서였다. 그렇다고 뭐 시험을 친다거나 하진 않고, 여행삼아 온 것이기도 해 심적 부담은 없다.

 

  

 

경복궁 코스 중 가장 마음에 드는 곳은 <경회루 연못>이었다. 바닥에 수로가 있어 인공연못치고는 물이 맑고 잉어가 살고 있는 왕의 연회장소였다. 국보 224호로서 근정전 서북연못 안에 세운 경회루는 나라에 경사가 있거나 사신이 왔을 때 연회를 베풀던 곳이지만, 오늘 답사길에 보니 수도 서울 한복판의 청계천 인공천보다야 백번 뛰어난 정원 겸 연못이었던 것이다. 조상들의 자연친화적 건축술에 다시 한번 감탄했다. 지금이야 시민들의 휴식공간인 공원으로 돼 세월의 무상함을 실감케도 하였다.

 

 

 

중간에 잠깐 담배를 한대 피우느라 화장실엘 다녀왔다. 국보급 문화재가 있는 곳이라 경복궁은 금연구역이었고 순찰대, cctv 등이 감시하고 있어 시인에겐 불편하였다. 나와 보니 일행은 벌써 어디로 갔는지 찾기 어려워 맨 처음 왔던 근정전 궐문의 수문장 의식을 촬영하였다. 그리고 비상연락처 왕회장 폰으로 전화해서 위치를 찾아 <경복궁 안내책자>를 참고해 합류케 되었다. 벌써 끝까지 가 있었다. 향원정 연못을 함께 봐 다행이었고 여기서 여정은 막을 내렸다. 이곳은 왕비가 노닐던 정자였는데 운치가 있었다. 해설사는 시낭송을 들려준 다음 작별인사를 하고 일행들에게 "우리궁궐 길라잡이" 책갈피를 선물로 주었다. 보니 서울KYC 시민자원활동가 안내가 적혀 있었다.

 

 

 

3시간에 걸쳐 경복궁 답사를 마쳤지만, 일부분만 보고 떠나왔다. 나머지는 소식지 "온새미로"를 참고하면 되겠다. 빗줄기가 듣는 가운데 <수원 화성행궁>으로 여정을 계속하였다. 김기혜 수원시 화관광해설사가 노심초사하며 빗 속에서 기다리고 있었는데 마침 비가 그쳤다. 인조대왕의 힘인지 화성행궁의 진면목을 보고 듣게 돼 무척 좋았다. 해설사의 자상한 설명을 들으며 걸음을 옮기니 드라마 "이산"의 장면들이 스쳐갔다. 예정대로라면 화성열차를 타고 둘러볼 작정이었는데 비땜에 취소되고 그냥 걸었다. 내 생각엔 경복궁보다 여기가 더 마음에 들었다. 인조의 개혁 열정이 서린 곳이고 군사훈련 장면도 떠올려 볼 수 있는 곳이기에. 

 

 

 

 

차를 타고 오면서 이곳 수원시 일원은 서울 도심과는 달리 서민들이 많이 사는 친근한 고장이란 인상을 받았다. 산과 들이 한눈에 보이고 번잡하지 않은 거리가 정겹게 느껴졌다. 팔달로를 거쳐 신풍루를 지나 화성행궁에 들어서니, 탕평책을 펴기 위해 어머니 <혜경궁홍씨 진찬연>에 5천 정예군사를 이끌고 긴 행렬을 이뤄 여기까지 온 인조의 지혜와 의지가 되살아왔다. 신분계층의 차이를 넘어 경로잔치를 베풀며 백성의 고충을 함께 나누고자 한 개혁의지가 곳곳에 스며 있었다. 야간 군사훈련을 지휘하던 서장대가 팔달산 위에 깃발과 함께 나부끼고 있어 더욱 경이로웠다. 또 해설사의 열정도 대단해 이해가 한결 수월했다.

 

  

 

이곳은 <대장금> 촬영 장소이기도 해 명성이 자자했다. 회원들이 대장금과 함께 기념사진도 남겼다. 한 발씩 들여놓으니 화성행궁은 보기보다 무궁한 보물창고였다. 화성 하면 연쇄살인 사건 선입견이 있어 꺼림칙한 인상도 없잖았는데, 이날 직접 와서 듣고 보니 수원시의 관광마인드가 훌륭하게 와 닿았다. 특히 해설사의 노고가 대단하였다. 묻고 답하기를 반복하며 한너울 회원들은 당시 역사적 배경과 인조의 행적을 더듬었다. 사적 제478호로 지정되었지만 콘텐츠를 잘 활용하고 홍보하기에 따라서는 경복궁보다 가치있는 역사의 산실이 될 수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오후 6시가 다 되었다. 이날 비도 내렸고 마칠 시간이라 이쯤 해서 화성행궁을 아쉬움 속에 떠나야 되었다. 해설사가 "언제 다시 오시라"며 작별 인사를 건넸다. 활쏘기 터이자 경로잔치 터에서 발걸음을 돌려야 했다. 화성열차도 궁금했고 서장대는 꼭 올라갔어야 됐는데 좀 서운했지만 답사차량에 올랐다. 마치자 비가 다시 내렸고 팔달로 일대 <성곽 답사>를 마지막으로 일정은 막을 내렸다. 그리고 돌솥밥으로 저녁을 맛나게 먹고 마산으로 달렸다. 장장 17시간 걸려 궁궐답사를 성공리에 마무리한 것이다. 이처럼 답사란 내가 보고 느낀 만큼 알게 되는 것이고, 여행의 추억을 남길 수 있는 것이다. 한너울의 저력을 유감없이 발휘한 이번 궁궐답사는 회원들의 합심 덕분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