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무현, 이제서야 찾아 봬 죄송합니다^^

2010. 10. 27. 01:45더불어 사는 세상/시민사회

오랫만에 마산에서 진영으로 가 볼 일이 생겨서 시외버스에 올랐다.

박원철 시인이 진영신문을 만든다기에 도움차 들렀다.

마침 황영일 테너가 마중을 나왔길래 봉하마을에 한번 가 보자고 했다.

 

 

 

평일인데도 관광버스, 가족 단위 시민들이 그를 찾았다.

부엉이 바위, 생가, 묘소, 사자바위 등이

한눈에 들어와  내 가슴을 흔들었다.

 

포장마차에서 함께 봉하막걸리를 한잔 마시고

노무현 대통령의 죽음, 자원봉사 숨은 사연 등을

얘기나누며 찬바람 속에서 그를 못내 그리워하였다.

 

 

 

 

민주화와 통일에 큰 발자취를 남긴 그의 얼굴을

이곳 봉하마을 곳곳에서 볼 수 있었다.

바보 노무현은 넉넉한 웃음으로 맞아 주었다.

 

가장 존경받는 대통령 여론조사에서 그가 1위였다.

노동현안과 한미FTA에서 비판을 받긴 했지만

요즘같이 민생, 민주, 남북관계가 후퇴한 시점에

봉하마을 부엉이바위는 민주화의 성지로 떠올랐다.

 

 

 

 

그의 생가 초가집을 보니 바로 옛적 시골 고향집이었다. 

농기구, 물레 등이 사진과 함께 보존돼 있었다.

부모 손 잡고 온 아이가 기념사진을 찍는 모습이 인상깊다.

 

노무현의 무덤, 스스로 추방된 자들의 풍경...

서점 한켠에 내걸린 문구가 아프게 다가왔다.

즐비한 저작물들, 기념품 등에서 그의 체취가 배여났다.

 

 

 

 

박원철 시인은 진영에서 10년 넘게 주택건설업을 해 오면서

지난 추모식때 자원봉사 역할을 톡톡히 하였다.

자기 사무실을 통째로 참배객들에게 선뜻 내놓았다.

 

백만의 추모인파가 찾은 이곳 봉하마을을 상상해 보라.

그런데도 그가 겪어야 했던 푸대접은 왜였을까.

과연 그 누가 추모열기를 잠재우려 했단 말이던가. 

 

 

 

 

봉하마을은 볼거리가 적지 않았고 생각거리도 많았다.

찰보리로 만든 봉하빵도 그 중 하나였다.

이 모두에 깃든 노무현 대통령의 자취가 선명했다.

 

부엉이바위는 다음 번에 올라보기로 하고 돌아왔다.

황테너 얘기로 1시간 남짓 걸리는 길이라 한다.

"이제서야 찾아 봬 죄송합니다" 추모의 글을 남기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