땅끝에서 보길도로 답사길은 이어지고^^

2009. 12. 3. 04:32산행기/답사·산행·동문

지난 11월 29일 일요일 오후 1시, "한너울우리문화사랑회"의 답사길은 <땅끝에서 보길도로> 죽 이어졌다. 땅끝마을에서 낙지, 꽃게 정식으로 점심을 먹고 곧바로 보길도행 철선에 올랐다.  해남 땅끝은 무수한 정감을 불러 일으키는 최남단 육지마을이어서 오래 머무르고 싶었지만 일정이 빠듯했다. 관광버스, 승용차를 실은 장보고호는 바다 물살을 가르며 30분 거리 노화도로 달렸다. 노화도 선착장에서 관광버스를 타고 보길도로 연결된 다리를 건너 목적지로 가기 위해서였다. 섬에도 다리를 놓아 섬과 섬을 연결해 놓았으니 놀랄 만했다. 이날은 모처럼 푸른 바다와 대면했다. 배 위에서 회원들 얼굴은 활짝 피어났고, 추억의 사진들을 적잖이 남겼다.

 

 

 

 

 

 

노화도는 전복으로 유명한 섬이었다. 하선하자 섬길을 달려 곧장 보길도로 향했다. 오랫만에 접하는 <섬마을 풍경>은 나로 하여금 옛 추억을 생각케 했다. 짧은 기간이었지만 완도 신지도 섬마을 국어선생을 하면서 보낸 80년 무렵의 살풍경한 세월이 되살아났다. 반란의 고장 전라도길을 오늘은 이렇게 문화유산 답사를 다 오다니 격세지감이 들었다. 양철지붕에 빨강, 파랑 색깔을 입힌 집들이 새마을운동을 연상케 만들었다. 볏짚이 소용없게 돼 농협에서 사료를 사다써야 하니, 농사짓는 이들의 고충도 언뜻 돌아보게 되었다. 섬사람들의 생활이란 양식장이라도 있다면 모르되, 어장도 없다면 도시로 품팔러 떠나야 되었다. 자녀들 교육문제도 골칫거리일 터이다. 관광지로 꾸며놓았다 해서 부촌이라 부르기엔 어불성설이다. 수협에서 빚내 양식 사업을 하다 적조, 태풍이라도 닥치면 한순간에 망연자실할 수도 있는 것이다. 이런저런 생각을 하다 보니 어느새 보길도에 다다랐다.

 

 

 

 

 

마침 날씨가 개여 보길도 일원을 둘러보기에 좋았다. 문화유산해설사 강선생의 안내로 <우암 송시열 암각시문>부터 보았다. 제주도 유배지로 가던 도중 풍랑을 만나 잠시 머물다 마지막 남긴 시문이었다. 북벌의 아쉬움과 임금에 대한 서운함을 백도리 해변 바위에 새겨놓은 오언절구 시문 자욱이 만감을 교차하게 만들었다. 일종의 한탄시였다.  바닷바람을 맞으며 회원들은 열심히 해설을 듣고 또 기념사진을 촬영하기에 바빴다. 바다에 전복잡이배 한 척이 쏜살같이 지나갔다. 크레인이 장착된 배인데 값이 1억이란다. 주민들 대다수가 전복양식업을 하며 배, 차, 집 등을 갖춰 살기 좋은 섬이라고 자부한단다. 관광지로 이름난 곳이어서 더욱 그럴 만도 하였다.

 

 

 

 

다시 버스에 올라 <예송리 갯돌해변>으로 향했다. 아담한 해수욕장이기도 해서 경관이 뛰어났다. 방풍림 소나무숲이 천연기념물이라 한다. 한일해협에서 밀려드는 파도와 바람을 여기서 맞받는 최일선 섬이란 것이었다. 바닷가 바람을 쏘이며 아이들은 돌을 날리며 즐거워했다. 회원들 모두 답사의 여독을 푸는 듯 심신이 맑아지며, 추억어린 장면들을 사진으로 간직하였다. 작고 동글한 몽돌 갯돌이 깔려 있는 해변에서 한참을 쉬었으면 싶은데 일정이 그런 걸 어쩌랴. 한너울 회원들은 참으로 진지하고 착하게 답사지 설명을 들었고, 왕회장의 온새미로 소식지 일정표대로 순순히 따라주었다. 그리고 인차 부용동으로 기대감으로 설레이는 가슴을 안고 출발하였다.

 

 

 

 

 

<부용동>은 섬 한가운데 자리잡은 거대한 정원이었다. 이곳이 섬이란 생각이 안들 정도로 4백 고지 이상의 산들이 빙 둘러서 있었다. 등산로도 만들어 놓았다한다. 고산의 야심작인 오래된 낙원은 자연주의, 실사구시, 유학정신에 입각해 잘 꾸며진 아름다운 곳이었다. 제주도로 가던 도중에 풍랑을 만나 잠시 보길도 황원포에 상륙했다가 그곳 풍광에 매료돼 아예 눌러앉은 사연을 간직하고 있다. 문화유산해설사 강선생의 안내 덕분에 회원들이 수월케 보길도 12경을 둘러볼 수 있었다. 세연정을 비롯해 곡수당 낙서재 등을 차근차근 돌아보았다. 회원 중에 건축사가 있었는데 사진을 아주 정밀하게 찍는 모습이 인상깊었다. 자연의 흐름을 효율적으로 이용해 디자인하고 건축물을 배치한 게 관심을 끌었던 모양이다. 나는 나무, 산, 산밭, 길 등에 시선을 집중했지만.

 

 

 

 

 

세연정에서 기념촬영을 하고 고산의 주 살림공간인 <낙서재>로 향했다. 나는 산을 배경으로 터를 잡은 널찍한 이곳이 맘에 들었다. 잡목을 베어 세칸 집을 지은 곳인데 현재 복원작업중이었다. 신기한 듯 둘러보는 회원들의 표정이 자못 진지해 보였다. 곡수당 정자가 보였는데 세연정보다 작지만 돌을 활용한 건축 조형미가 뛰어났다. 물길을 끌어들인 거 하며 절묘한 돌다리 배치가 무척 인상깊었다. 사방을 둘러싼 산 속의 연꽃 형상을 한 부용동은 가히 선경이라 할 만한 자연 그대로의 정원이었다. 이만한 관광자원을 갖춘 섬이 드물 것이다. 여기에서 고산은 시도 짓고 자연과 대화하며 삼전도 굴욕의 아픔을 달랬을 것이다.

 

 

 

 

 

요새 둘레길 걷기가 유행인데 보길도 문화유적을 돌아보며 <함께 걷는 즐거움>은 이루 말할 수 없다. 특히 아이들이 신났다. 체험학습, 산교육이 따로 없었다. 물외의 선경이라 찬탄해 마지 않은 이곳에 둥지를 틀고, 선비의 절조를 지켜갔던 그의 삶의 흔적이 스며 있는 부용동을 걸으며 다들 무슨 생각을 했을까. 정원을 개방해 선비들, 주민들과도 어울렸을 터이다. 차를 들며 시회를 했다는 동천석실은 먼 발치에서 바라보아야 했다. 산밭에 눈길을 주었는데 황칠나무, 시누대, 소나무, 동백나무 등이 심궈져 있었고 싱싱한 야채도 가꾸고 있었다. 강선생의 문화유산 해설이 상당한 도움이 되었다.

 

 

 

 

 

 

이제 <떠나야 할 시간>이 되었다. 관광버스에 몸을 싣고 보길대교를 건너서 노화도 선착장으로 가야 되었다. 아쉬움에 보길도와 작별하기 전 잎새주 소주와 낙지 안주로 여정을 달래며 완도김 등 특산물도 샀다. 보길도에 대한 자부심을 안고 살아가는 강선생과도 소주 한잔 나누며 인사를 하였다. 언제 다시 오고 싶은 섬이었다. 전쟁 전후 민간인학살의 아픈 사연도 철썩거리는 완도의 유서깊은 관광지였다. 장보고호가 기다리고 있었다. 땅끝에 도착하니 이미 날은 어두워져 있었다. 배에 오르기 전 땅끝마을 표지석 사진을 찍어둔 게 무척 다행이었다. 전망대 케이불카도 타 보지 못한 채 답사 일정에 맞춰 보길도, 노화도, 땅끝을 뒤로 한 채 한너울우리문화사랑회 회원들은 마산, 창원으로 향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