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9. 5. 12. 03:01ㆍ바람부는 저 길이 우릴 부른다/1부·풀은 바람보다 먼저 일어난다
열번째 시집을 출간하고 결재를 위해 바쁜 하루를 보내던 어느날, 착한 후배를 만나 앞니 두 개를 선물로 넣게 되었다. 산행 중 부주의로 바윗길에서 떨어져 이빨과 어깨죽지를 다쳤다. 밤늦도록 원고작업과 시를 쓰다가 치료도 제대로 못한 채 진통제만 먹었는데 그만 빠져버린 것이다. 그것도 한밤중에 툭 내 몸을 떠나니 여간 서글퍼졌던 게 아니었다. 형편도 그렇고 장애인 심정도 알 겸 해서 이냥 내버려두고 지내기로 했다. 그런데 내서 대동이미지아파트 앞 대동치과 의사인 Dr.Kim을 오랫만에 만나 얘기를 나누다, "어, 선배님 이빨이 왜 그렇습니까?" 하더니 대뜸 활동을 많이 하시는 분이라 선물로 해 드리겠다는 게 아닌가! 진료의자에서 아랫니를 가지런히 깎고 윗니 본을 뜬 다음 견착식 치아를 제작해 끼워넣도록 했다. 그는 돈보다 사람을 소중히 여기며 가난한 시인에게 빠져버린 대문니 두 개를 이쁘게 만들어 불편없이 해 준 것이다. 나올 때 후배 몰래 사진을 한컷 찍어 이렇게 블로그에 내 마음을 적어 올리게 되었다. " Dr.Kim 정말 고맙다.." 이렇게라도 블로그에 포스팅해야 한결 나을 것 같아서 감사의 편지처럼 띄운다. 아래 시는 작년 가을 이빨이 툭 떨어질 때, 시인의 심사를 적은 것이다. 다시 읽어보니 그때의 기억이 새롭다.
내일을 위한 오늘에 살고 싶다
앞니 하나 기어코 빠져버렸네
뼈아픈 기억을 간직한 채
속절없이 내게서 떠나갔는가
하얀 밤 지새우며 시를 쓰다가
며칠째 앓던 이빨 무심결에
툭 떨어져 나가다니 서글퍼라
팔팔한 젊은 시절 혹사시키며
제때 못 챙겼던 나의 분신을
주머니 속에 가만히 넣어두자
잇몸으로라도 끝내 살아남아서
사람사는 세상 오는 날까지
산넘고 물건너 내일로 가세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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