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산

2005. 2. 21. 00:04더불어 사는 세상/시민사회

스크랩] 금당이 만난 사람들(월간 '책읽는 사람들')
2005.02.20

자연과 사람을 사랑하는 사람
    -한의사 임종헌 -


*'임 산'이란 닉네임으로'임 산의 거꾸로 사는 이야기'블로그를 운영하는 한의사 임종헌 님

간혹 삶을 연극에 비유하거나, 우리가 살고 있는 세상을 ‘고뇌의 바다’라고 말하기도 한다. 그만큼 개개인이 겪어햐 하는 삶의 역정은 행복과 불행의 기로에서 수많은 형태의 질곡과 싸워야 하며, 그런 개개인이 모여 사는 ‘사회’라는 공동체 역시 한 색깔 한 소리로 정체성을 수립하기란 어려운 법이다. 그래서 우리가 살고 있는 사회는 다양한 목소리의 이해관계를 집합하여 보다 나은 미래를 위해 발전시키고자 부단히 노력하는 리더들이 있다.

유구한 역사를 지닌 우리의 근세사는 정치 경제 사회 문제에 있어 수많은 고난을 지나왔다. ‘아픈 만큼 성숙한다.’는 말처럼, 이제 그 정점에서 우리는 우리가 앞으로 나아가야 할 미래의 모습을 다듬기 위해 모두가 힘겹게 노력하고 있다.

충주에서 ‘임종헌 한의원’(충주시 교현2동 부강 아파트 상가 2층)을 개원하고 있는 한의사 임종헌 씨의 지나온 과거를 살펴보면 이러한 우리 사회 변화의 역정과 맞물려 있음을 보게 된다. 충주에서 태어나 누구보다 충주를 사랑하는 임종헌 씨는 고향에서 초중고등학교와 대학을 마치고 교편생활을 한다. 괴산 감물중학교 교사로 재직시절 1987년 전교조 운동과 관련하여 해직이 되고, 그 와중에 어렵게 지내는 가운데 나이 마흔이 다 되어 세명대학교 한의과대학에 입학, 한의사 공부를 시작했다.

“그 동안 마음이 이끄는 대로 사회를 보고, 또 마음에서 나오는 양심의 소리대로 실천하고자 했으나, 모순된 기존 사회의 틀에 맞부딪혀 몸이 상하게 되었어요. 그래서 이번에는 그런 내 마음을 담고 있는 몸이 어떤 것인가를 알고 싶어 한의대를 간 것입니다.”

임종헌 씨는 스스로 선택하고 있는 인생철학이 무엇인가를 묻는 질문에 잠시 대답을 미루다가 “양심에 따라 자유롭게 행동하는 게 제 철학입니다.”라는 대답을 했다. 덧붙여서 “그러자면 몸이 힘들겠지요?” 하고 반문했다. 그것은 우리 사회가 양심에 따라 행동하면 손해 보거나, 저항에 부딪쳐 무너지는 일이 많다는 의미이기도 하다.

다행히 그 동안 민주화를 위해 힘겹게 싸웠던 공로가 인정되어 2003년 ‘민주화운동 보상심의위원회’에서 ‘민주화운동 관련자’로 인정을 받았다. 그리고 그 전에 2000년에 교직에 복직이 되기도 했으나, 그는 지금 한의사의 길을 가고 있다.

“교직에서 아이들을 지도하는 일이나, 아픈 사람들을 치료하는 일들은 제가 희망하는 그런 일에 포함됩니다. 무엇보다 우리 사회에서 가장 도움을 받아야 하는 분들은 경제적인 어려움을 겪거나 몸이 아파 고통을 받는 사람들이 아닐까요. 그분들에게 제가 할 수 있는 일을 하고 싶어서 이 길을 택했습니다.”

임종헌 씨는 지금 ‘사회민주주의를 위한 자율과 연대’ 대표, 사회봉사단체인 ‘작은사랑실천운동연합’ 이사장으로 활동하고 있다. ‘작은사랑…’은 어려운 가정에 조금이라도 도움을 주고자 ‘아이들 공부방’을 운영하고, 장학금을 지급하는 봉사단체다. 앞으로 어린이전문병원과 요양원을 설립하는 원대한 꿈을 가지고 조금씩 힘을 모아가고 있다고 했다.

처음 대할 때 임종헌 씨는 ‘매우 개성적인 삶을 추구하는 사람이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가 꾸려가고 있는 인터넷 포털사이트 ‘다음’ 칼럼에 올려진 사진에서는 수염을 기르고 있었는데, 직접 만났을 때는 말끔하게 깎았다. “기르고 싶을 때 기르고, 깎고 싶으면 미련 없이 깎고 그럽니다.”며 웃었다. 군생활도 ROTC 교육을 이수하고 공수특전단에서 장교생활을 했다. 여행을 좋아해서 백두대간을 종주(이 여행기를 곧 출간할 계획을 가지고 있다)하는가 하면, 특별히 개발한 요리를 손수 만들어 가족과 친지들에게 맛보이기도 한다.

“한때는 책을 무지 많이 읽었습니다. 그런데 책을 많이 읽는 사람들은 대부분 감옥으로 가더군요. 그래서 그 때부터 책을 덮고 마음 쓰는 일을 하고자 했지요. 한때는 문학을 하려고도 했지만, 제가 꿈꾸는 그런 행동을 실천하기에는 아무래도 어려울 것 같아 접었습니다.”

이 말을 하면서 그는 웃었다. 물론 기자는 그 말에 감춰진 자조적(自嘲的)인 그의 기분을 이해했다. 책을 많이 읽으면 사회와 인간을 이해하게 되고, 그로 인해 얻은 양심을 실천에 옮기다 상처를 입은 사람들이 많다는 말이었다. 인터넷 칼럼에 올려진 매우 깊이 있고, 논리적인 그의 글들을 보면 그의 독서량과 글솜씨를 가늠할 수가 있다. 1987년에는 교단에서 얻은 체험들을 모은 <참교육일기>(참세상출판사)라는 저서를 출간하기도 했다. 

그는 바쁜 일상에서도 짬을 내어 책을 읽는다. 얼마 전 고등학교 3학년인 아들 정하에게 읽을 만한 책을 추천해 달라고 해서 읽은 베티 그린의 <목화마을 소녀와 병사>를 감명 깊게 읽었다고 한다. 제2차 세계대전이 한창인 때 미국 중남부 아칸소 주의 목화밭으로 둘러싸인 자그마한 마을 젠킨스빌에 살고 있는 유대인 소녀 패티 바겐은 순수하고도 착한 독일청년 안톤 라이카를 사랑한다. 그러나 안톤이 나찌에 징집되어 전선에 나가게 되면서 불행이 시작된다. 미군에 포로가 된 안톤이 미국에 이송되어 수용소 생활을 하다가 탈출하고, 패티는 적군인 그를 숨겨준다. 사랑하는 패티에게 처벌이 돌아올 것을 걱정한 안톤이 비밀아지트를 떠났다가 총살되고, 패티는 적군을 숨겨준 죄로 처벌을 받는다는 이야기다. 임종헌 씨는 이 소설을 읽고 스스로에게 ‘실정법과 양심 가운데 어떤 것이 우선하는 것일까?’라고 물어보았다고 한다. 대답은 “나는 서슴없이 양심이 실정법에 우선한다.”였다. 법이란 인간이 자연 속에서 얼마나 행복하게 사느냐 하는 명제로 만들어졌지만, 때론 그 법이 인간의 진정한 삶을 억압하는 족쇄가 되기도 한다. 그럴 경우 그 실정법에 반한 행동을 하는 용기는 양심이 아니고서는 실천할 수가 없기 때문이리라.

인터뷰 하는 도중에도 많은 환자들이 찾아와 진료를 하는 짬짬이 이야기를 나눌 수밖에 없었다. 의사에게 환자는 최우선으로 돌보아야 할 대상이기 때문이다.

“의사는 전생에 많은 업을 지은 사람이 하는 것 같아요. 그 죄를 모두 씻기 위해 의사라는 직업을 택하게 했을 겁니다.”

그 말을 하면서 임종헌 씨는 웃었다. 의사라는 직업이 아직은 우리 사회에서 각광받는 직업이다. 하지만 정작 의사 자신은 무척 고달프다. 단순한 돈벌이 수단으로 택한 직업이라면 수입만 생각하면 되지만, 의사는 아픈 환자를 낫게 해 주어야 한다. 사람이 사는 곳에는 언제나 환자가 있게 마련이고, 환자가 있는 한 의사는 자유롭지 못하다. 말하자면 개인의 삶을 위한 시간을 담보해야만 의사의 직분을 다 할 수 있는 것이다. 언제 어느 때고 호출이 오면 병원으로 달려가야 하기 때문에 늘 긴장한 상태로 대기하여야 하는 게 의사다.

앞으로의 계획을 묻는 질문에 “산으로 들어갈 겁니다.”라고 대답했다. 기자는 불문(佛門)에 출가(出家)하는 것을 말하는 줄 알았다. 그의 설명은 공기 좋은 산골에 터를 마련하고, 환자들이 좋은 공기와 경치를 맛보면서 평화롭게 병을 치료할 수 있는 그런 ‘파라다이스’를 마련하고 싶다는 거였다. 그만큼 그는 사람을 사랑하고 있었다. 그가 쓴 ‘내가 충주를 사랑하는 열 가지 이유’라는 글에서도 그의 이런 마음이 잘 나타나 있다. 호수와 산천경관이 좋고, 번잡하지 않고, 순박한 사람들이 살아가는 충주를 사랑한다고 한다. 그것은 어찌 충주에만 국한하는 말이겠는가. 그는 그렇게 사람이 평화롭게 살 수 있는 그런 자연과 사회를 원하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