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유산 답사의 발전 방향

2006. 3. 4. 18:31산행기/답사·산행·동문

연구원 금창영
 
 

      삼천리 금수강산 전체가 문화재라며 온통 난리인 적이 있었습니다. 그 덕에 문화유산에 대한 관심이 고조되어 갖가지 형태의 여행이나 답사를 떠나는 사람이 부쩍 늘었습니다. 그러나 부푼 가슴을 안고 답사를 다녀오기는 하지만 거기에서 무엇을 보고 얻었는가를 생각하면 허탈감에 사로잡히는 것 또한 어쩔 수 없는 우리의 현실입니다. 그래서 여기저기서 발췌한 자료집을 손에 든 채 누군가의 논리정연한 설명을 듣고, 그것을 수첩에다 적고, 그 흔적을 남기기 위해 사진을 찍어대곤 합니다. 하지만 각자 답사에 대한 평가를 보면 모든 이들의 느낌이 다를 수 밖에 없음에도 개인의 느낌을 그저 좋았다는 한마디로 간단히 끝내버립니다. 이러한 현상은 일면 자기 감정을 표현하는 방식의 미숙함일 수 있지만 진정 답사라는 것이 문화유산을 감상하고 그 안에 녹아있는 역사를 살아간 이들의 삶, 문화, 역사이야기를 찾으려는 노력이 부족함에서 오는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이러한 현상은 거의 모든 답사단체에서 겪고 있는 문제입니다. 그래서인지 몰라도 요즘 들어 많은 답사 단체들이 정원을 채우지 못하고 있습니다. 예전 70년대 일본에서 시민운동이 활성화되면서 2~3년 정도 답사붐이 있은 후 지금은 거의 대중답사가 이루어지지 않는 사실을 보며 어쩌면 그 전철을 밟아 가는 것이 아닌가 씁쓸하기도 합니다. 이미 알려진 답사의 황금코스는 주말이면 시장바닥같고 한두번 그 코스를 다녀온 사람이라면 쉽사리 다시 찾지 않습니다. 강사의 색다른 설명이나 저렴한 가격도 흥미를 끌지 못하고 있습니다.

  그렇다면 이러한 문제는 어디에서 비롯되었으며 어떻게 해결해야 할까요?
우리는 자신의 느낌을 제대로 이야기할 줄 모릅니다. 매체나 다른 이에게서 주어지는 내용을 받아들이는 것에만 익숙합니다. 문화유산을 비판적으로 바라보기는 더욱 힘듭니다.
누가 뭐라 해도 직접 현장에 가서 보아야 우리가 생각하는 답사(踏査)라고 할 수 있습니다. 답사의 첫번째 요건은 바로 현장 체험인 것입니다. 그러나 현장에 가서 문화유산을 확인하는 것만이 결코 답사가 아니란 것을 우리는 잘 알고 있습니다.

  요즘 많이들 이야기하고 있는 '문화의 시대'란 것은 무엇일까요? 우리가 행하고 있는 답사도 일종의 문화행위입니다. 이 문화란 단어가 포함하고 있는 가장 큰 의미는 '다양성'일 것입니다. 문화라는 담론에 대해 이야기하기 전에 한가지 짚고 넘어갈 부분은 지금 우리 사회에서 문화라는 담론에 대해 얼마나 많은 이들이 고민을 하고 있을까?라는 부분입니다. 사실 '아침에 우유한잔 점심엔 페스트푸드'로 내장을 달래며 일상에 치여 사는 이에게는 문화란 담론이 별 흥미가 없겠지요. 아니 그보다 정태춘의 '아! 대한민국'이란 노래에 나오는 아버지는 막일을 나가고 어머니는 파출부 나간 후 지하 단칸방에서 동생과 불장난을 하다 죽은 소녀에게, 그리고 그 가족에게 문화란 말은 사치일 뿐입니다.

우리는 여기에서 그 문화유산을 보는 행위 자체는 과연 어떠해야 할까? 그리고 그것이 진정으로 한 사회와 호흡하는, 민중과 호흡하는 행위가 될수 있는 방법은 무엇일까?라는 질문을 통해 우리얼 답사의 정체성을 찾고자 합니다. 그를 위해 우리는 아래와 같은 우리얼 답사론을 제기합니다.

 
답사를 자신이 기반하고 있는 지역이 아닌 곳에 직접 가서 사물을 확인하는 행위 모두를 지칭한다고 할 때 답사에 참여하는 이는 무엇보다 그 문화유산을 보고 싶다는 적극적 의지가 있어야합니다. 이런 저런 답사기회가 늘어남에 따라 문화유산 간의 차이점도 보이고 맘에 드는 것도 생기게 됩니다. 사실 답사를 통해 문화유산을 보는 눈도 하루아침에 형성되는 것은 아니지요. 어느 정도 문화유산에 대한 느낌에 생기면 표지판에 있는 용어들과 사람들이 사용하는 용어에 대해 궁금증을 가지게 됩니다. 물론 그 용어의 내용을 알기 위해 사전을 찾아볼 것까지야 없지만 기본적인 개념들을 알고 문화유산을 보면 좀더 포괄적인 느낌을 가질 수 있습니다. 이렇게 문화유산중에 마음에 드는 것이 생기는 것과 더불어 각각의 문화유산의 차이점이 보이는 것이 문화유산을 보는 첫 단계입니다.

  문화유산을 보는 다음 단계는 어울림을 찾는 것입니다.
  우리 문화는 중국처럼 거대하지도 않고 일본 문화처럼 섬세하지도 않습니다. 우리 문화는 그 대신에 어울림이라는 매력적인 멋을 가지고 있습니다. 어울림을 볼 때는 먼저 각각의 문화유산을 구성하고 있는 부재들의 어울림, 조화를 봅시다. 균형잡히고 비례미가 탁월한 문화유산도 있지만 그렇지 못한 문화유산도 많이 있습니다. 어떤 틀에 꼭 맞는 것이 무조건 좋은 것은 아니니 마음을 열고 찬찬히 보면 그도 나름대로 흥미가 있을 겁니다.

  그리고는 문화유산과 문화유산들의 어울림을 보아야 합니다.
쉬운 예로 사원을 구성하는 당간지주, 일주문, 천왕문, 탑, 석등, 불상. 이러한 것들은 각각 나름대로의 미를 가지고 있습니다. 따로 떨어져 있어도 좋아 보일 수 있다는 거죠. 하지만 이러한 것들이 서로 어울리면서, 자기의 역할을 할 때 더욱 보기가 좋습니다. 묵묵히 자신의 역할을 하고 있는 전체 속의 하나. 그리고 그 하나하나가 이루고 있는 전체를 놓쳐서는 안 되겠습니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그 문화유산과 자연과의 어울림을 보아야겠습니다.
  주변 풍광과 어울리는 문화유산, 주변의 문화적 배경과 어울리는 문화유산, 그리고 지역민들에게 그 문화유산이 가지는 의미, 그 문화유산이 왜 그곳에 있는지, 이 부분이 우리가 가장 놓치기 쉬우면서도 가장 큰 감동을 얻을 수 있는 부분이랍니다. 그럴려면 무언가 알아야 한다는 강박관념보다는 멀리서도 보고 가까이서도 보고 동네사람들과 이야기도 해보아야겠습니다. 주변 산에 올라서서 지형과 함께 본다면 더욱 좋겠지요. 이렇게 되면 정말 즐기는 것이 무엇인지 알 수 있지 않을까요?
 
많이배웠다고 큰 감동을 느끼는 게 아니니 공부를 하지 못했다고 답사가 두려울 수는 없습니다. 먼저 현장에 가서 그 땅을 밟아보는 것이 답사의 첫째 요건이요 생명이죠. 답사는 전문가의 설명, 풍부한 자료집에 가치가 있다기보다 좀더 여유를 가지고 오감을 동원하여 자기 관점에서 문화유산을 보는 것이 가장 중요합니다. 눈으로는 그 문화유산과 함께 주변의 풍광을 둘러보고, 가능하다면 손으로도 만져보고, 얼굴도 그곳에 대어보고, 귀로는 주변 자연의 소리도 들어봄으로써 사진이나 비디오로는 결코 얻을 수 없는 답사의 강점을 깊이 느낄 수 있을 겁니다. 그러니 한번 갔던 곳이라고 가기를 망설일 필요가 없겠습니다. 계절에 따라 시간에 따라 보는 위치에 따라 심지어 당시 기분에 따라 느낌은 달라질 수 있으니까요. 이때부터 우리는 아는 것이 생기는 것입니다. 그때 드는 느낌이 아는 것이죠. 그러면 그 느낌들을 서로 공유하기도 해야 합니다. 같을 것을 보고도 중점적으로 보는 것은 분명 다를 수 있고 따라서 느낌도 다릅니다. 답사를 할 때는 그러므로 남의 말에 귀를 기울이되 액면 그대로 받아들이지는 말아야 합니다. 그러한 태도를 취해야 할 대상은 안내자의 설명도 마찬가지입니다. 그것을 다같이 공유하며 올바르지 않은 것은 수정하고 옳은 것은 살을 붙이는 작업을 통해 진정 답사가 즐기는 것과 더불어 자신을 되돌아보는 작업속에 새로운 마음으로 현실 생활에 충실할 수 있게 하는 것이어야 합니다.

  지금 젊은 세대들은 느낌이 모든 것에 우선하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그러한 모습은 답사를 가도 마찬가지입니다. 그러나 다시한번 강조하지만 각각의 느낌은 그것을 공유하고 객관화시키지 않으면 자기실천으로 전화되지 못합니다. 우리는 답사에 임하면서 느낌의 자기철학화도 고민해야겠습니다.
알아야만 보이고, 알아야만 느낄 수 있는 건 아닙니다. '아는 마큼 보인다'라는 말만큼 답사에서 폭력적인 이데올로기도 없습니다. '안다'는 행위는 잊혀졌거나 숨겨져 있던 잠재적 의미의 재구성을 뜻하는 것이 아닙니다. 이는 우리의 의식 속에 실재하는 '앎'에 또 하나의 앎을 더하는 것일 뿐입니다. 그러니 느끼기 위해 자신의 마음을 여는 것이 먼저이고 또한 그래야만 문화유산은 수백년 수천년의 역사를 보여줍니다. 그렇게 느끼고 생각하고 또 그것을 서로 이야기하고 그 내용들을 어떻게 우리 생활 속에서 실천할 것인가를 끊임없이 고민하는 것이 정말 좋은 답사입니다. '아름답다'는 말은 '나답다'의 어원을 가지고 있습니다. 사실 어찌보면 '아름다움'이란 극히 주관적이라 하겠습니다. '아름다움'의 기준이 개성적이고 주관적이기 때문이지요.
 
  우리얼은문화유산답사를 통한 역사인식 고취와 전통문화의 보존 계승 발전시키는 것에 목적을 두고 있습니다. 기존에 나타나고 있는 답사참여자들의 수동적인 모습, 이미 고갈되어버린 답사코스들, 형식화 되어버린 답사방식, 몇몇이 모여 어려움을 토로하지만 별다른 대안이 나오지 못하고 있는 현실을 해결하기 위해서 차를 타고 멀리 떠나는 답사보다는 자신이 살고 있는 지역이나 주변의 지역을 둘러보는 답사코스를 개발하고, 참여자들이 직접 체험하는 기회를 부여하거나 생태기행, 건축기행 등과 접목하는 것도 필요한 방법이라고 생각합니다. 또한 한꺼번에 많은 문화유산을 보기보다는 찬찬히 둘러보며 여유롭게 답사하는 것도 필요하다고 보며, 회원들의 역사인식 고취를 위한 연구와 행사, 전통문화의 계승 발전을 위한 고민들을 계속해나갈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