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해 철쭉은 겨울에 피었지

2025. 4. 29. 08:33<그리운 내 님도 돌아오소>

그 해 철쭉은 겨울에 피었지

빗점골에 철쭉이 필 때면
지리산평화제를
노고단에서 함께 열자
깊은 골짝을 끼고
가파른 산들을 두른
그곳에 제사상을 차리고
그해 녹슬은 해방구
못다 이룬 꿈을 기리며
위령제를 치르자
눈보라 매섭게 몰아치던 밤
한 빨치산 여전사가
얼어죽은 채로
산 아래 마을을 바라보며
<지본론> 책을
손에 꼭 쥐고 있던 모습이
내겐 잊혀지지 않아라
산신제를 올리고
이제는 화해를 이야기하는
이들은 무슨 맘일까
조국통일 비원을 그리며
지리산 아흔아홉골에
꽃넋으로 산화한
그들이 가슴에 품은 세상을
기억하고나 있을까
찢겨진 산하를
온몸으로 거부하고 싸운
그날 전사들의 혼은
자본의 착취를 넘어 평등한
사회를 꿈꾸었거늘
그 해 철쭉은 겨울에 피었지
조정래의 <태백산맥>
권운상의 <녹슬은 해방구>
대하소설이 우리에게 던지는
겨레의 염원은 멀리 있고
반란의 저 산은 꽃사태지고
무리져 솟은 산죽은
칼바람에 울부짖는구나
단 한번이라도
이곳을 거쳐간 사람이라면
풀 한포기 바위 하나
무심히 지나치지 말아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