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5. 2. 26. 18:47ㆍ산행기/답사·산행·동문
이번 휴가 기간 동안 여러 곳을 다녔지만 우리 내외를 가장 즐겁게 한 곳이 낙압읍성입니다.
제가 어린 시절 살던 집과 현재 저의 처가도 낙안읍성에 있는 초가집과 조금도 다르지 않습니다.
다만 지붕만 70년대 새마을 사업으로 개량이 되어 있을 뿐이지요.
아내와 저는 타임머신을 타고 40 여년 전 어린 시절로 돌아간 느낌도 들었지요.
낙안읍성의 성벽만 아니라면 어린 시절 보고 자라 온 시골의 모습이 그대로 남아 있기 때문입니다.
낙안 읍성은 현존하는 조선 시대의 읍성들 가운데 가장 보존이 잘 된 곳으로
특히 성 안에는 전통적인 마을이 그대로 남아 있습니다.
고려시대 후기와 조선조 초기에 왜구가 자주 침입하여 처음에는 흙으로(토성) 성을 쌓았다고 합니다.
세종 실록에 의하면 세종 6년(1424년) 낙안 토성이 허물어져 다시 성을 넓혀 돌로(석성) 성을 쌓았다고 합니다.
세종 당시 성의 둘레는 2865자 이고 성벽의 높이는 높은 지형에서 8.5자 이고 평지에서는 9.5자 였다고 합니다.
현재 남아 있는 유적으로는 동헌, 객사, 임경업 장군 비각등이 있습니다.
성내에는 100여 가구의 민가가 살고 있었는데 현대화 물결에 따라
전통적인 마을의 모습이 변형되기 시작 하고 성곽이 자연적으로 허물어져
1983년 사적으로 지정하여 보존하게 되었다고 합니다.
현재도 성내에는 민가가 실제로 거주 하면서 생활 하고 있습니다.
사진을 중심으로 낙안읍성의 이모저모를 소개해 드리겠습니다.
아래 사진은 낙안읍성으로 들어가는 입구 입니다.
아! 얼마만에 보는 호롱불인지요?
어린 시절 호롱불을 사용하여 생활하던 시절이 엊그제 같습니다.
저는 중학교 3학년때 처음으로 우리집에 전기가 들어와서 밝은 밤을 보낼 수 있었습니다.
우리 아버지, 어머니, 할아버지, 할머니가 사용하던 생활용품 입니다.
저기 보이는 똥장군은 제가 진주에 처음와서 10여년간 사용한 적이 있어서 더욱 감회가 새로웠습니다.
점방....
제가 자란 시골에서도 저런 점방이 있었답니다.
초가집 지붕을 바꾸기 위하여 마을 사람들이 이엉을 만들고 있습니다.
구경온 어린이들이 신기한듯 구경을 하고 있습니다.
임경업 장군의 선정비 입니다.
이 비는 조선 인조 6년(1628년) 4월1일 건립 하였습니다.
임경업 장군은 인조4년 낙안 군수로 봉직 하면서 선정을 베풀었을 뿐 아니라
정묘호란때 큰 공을 세운 것을 기리기 위해 군민이 세운 것이라고 합니다.
지금도 매년 음력 정월 보름에 제사를 지낸다고 합니다.
초가집과 감나무.....
그리고 돌담길....
저는 추억속의 저 풍경을 보고 차마 발길을 돌리기가 어려웠습니다.
저는 개인적으로 회사 야유회등으로 낙안읍성을 두번 정도 방문한 일이 있었습니다.
그래서 기회가 되면 아내에게도 꼭 보여 주고 싶었습니다.
이번에 회사의 휴가를 받아서 아내와 낙안읍성을 구경 하면서 즐거웠고 행복 하였습니다.
낙안읍성 내에 있는 장터에서 국밥으로 요기를 하고
이골목 저골목 다니면서 어린 시절을 회상 하였습니다.
돌아 보면 엊그제 같은데 지금은 너무 먼 옛날 이야기가 되어 버렸습니다.
짧은 시간이었지만 참으로 소중하고 아름다운 추억이 되었습니다.
고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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